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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르는 산

서울들레길 제 7-2구간 봉산, 앵봉산 구간

생각 보다 좋은 전망으로 눈이 즐거웠던 코스 였다.  총거리는 10km정도이지만 산 두개를 내리고 오르고 반복해서 운동량은 꽤 되었던 코스였다. 7-1 구간보다 7-2구간을 먼저 시작해서 돌아 가는 길등을 고려해서 구파발 역에서 증산역으로 가는 길로 코스를 정했다. 가는 날 날씨가 아주좋아서 출발 부터 좋은 전망이 기대되는 날이었다. 코스는 총 10.2km 소요시간은 4시간 반정도 걸렸고 경로는 다음과 같다. 코스의 고도 그래프에서와 같이 구파발 쪽에서 가는 길이 초기에 오르고 내림이 급하긴 하지만 말미에 천천히 걸어 내려 가는 코스로 내려가는 길이 다리에 충격이 덜하여 좋은 것 같다. 


등산/하이킹
2017. 6. 11. 8:52 AM
소요 시간 4h 21m 6s , 거리 10.2 km
-작성자 black207, 출처 램블러
7-2코스를 구파발에서 시작해서 증산역까지
트립의 상세 내용을 보려면 http://rblr.co/TH6q 를 클릭하세요.

일행과는 구파발역에서 집합을 했다. 먼저온사라들과 가볍게 김밥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발걸으을 나섰다. 


구파발이라는 지명은 원래 서울에서 출발하여 급한 소식을 의주까지 전하던 서발(西撥)이 대기하던 곳이라고 한다.(문화콘텐츠닷컴 참조) 의주까지는 여러개의 파발참이라는 곳이 있어 말을 바꾸어 타기도 했는데 말이가는 기발은 25리에 1개씩 걸어가는 보발은 30리에 한개씩 있었다고 한다(의주까지 1050리에 40여개 파발참으로 평균 26.25개로 산지등에 좀 먼거리가 있었던듯 하다.). 조선시때때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1리에 393미터(조선시대때는 393미터, 대한제국의 기준에서 420미터, 위키피디아참조)였다고 하니 25리면 약 10km에 한개씩의 참이 있었다고 볼수 있다. 이 참과 참사이의 거리를 "한참"이라고 했는데 이런 공간적인 개념이 지금의 시간적인 개념으로 상당히 오랜시간이라는 의미로 변했다고도 한다. 


지금은 구파발에서 그런 옛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변했다. 지금은 진관동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고 예전에 각종 신문기자들이 살던 기자촌도 유명했다. 

 



첫번째 이정표 발견...



이정표를 지나 길을 건넌다.



공사장을 옆으로 끼고 산쪽으로 나아간다. 아마도 다음에 누군가 이길을 지나면 새로운 건물 옆을 지나게 될 것 같다






주유소 옆을 돌아서



서서히 산길로 접어든다.



둘레길을 돌다보면 저 빨간통이 아주 반갑다.



앵봉산의 간단한 소개를 본다. 팻말 내용외에 찾아 보니 앵봉산은 북한산 비봉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박석고개를 넘어 봉우리를 이루는 곳이고 김정호의 대동여 지도에는 효경산(孝敬峰)이라고 표기되있고 서오릉의 주산을 이룬다고 한다. 원래 은평구 갈현동 대성고등학교 부근에 거주하던 박씨 문중에서 대대로 효자가 많이 태어나 효경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서울시 발간 서울의 산내용, 책사냥꾼님 블로그 참조 http://bookhunter.tistory.com/32)



시작은 계단길이다. 산을 점점타면 탈수록 계단길이 싫어 진다.



계단이 끝나고 조금걸어 가면 쉼터가 나온다.









첫번째 오르막을 좀 올랐다 싶은 시점에 나타나는 운동기구들...



오르막길을 다올라 앵봉산 정상에 오면 일산 방향으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다만 조망지점이 좀 좁은게 단점이라 등산객이 많을때는 불편할 듯 하다. 잠시 물을 마시고 길을 다시 나선다. 







앵봉산은 서오릉의 동쪽에 위치하는 산으로 서오릉 구역과 연결되어 있다. 바로 들어갈수 없기는 하다. 



앵봉산을 내려가는 길... 이지점이 대략 2.8km 지점이다. 여기서 벌고개까지(1.3 km)정도는 계속 내리막이다. 






벌고개 근처에 도착 하면 농가가 나타난다.



농가를 돌아 내려가면 벌고개가 나타난다.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지난다. 아마도 몇년 뒤면 이렇게 지나지 않고 위를 지나는 녹지연결 다리를 따라 건너게 될 것 같다. 올해 다리를 기공하도록 계획이 세워 졌다하니 앵봉산에서 봉산으로 넘어가면서 운동량이 조금은 줄게 될 듯 하다. 다만 다리위의 풍광이 또한 새로운 느낌을 주게 될 것 도 같다. (은평구, 30일 서오릉고개 녹지연결로 조성사업 기공식)



서오릉과 벌고개의 유래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도 7대 세조의 장남 덕종(추존왕, 서오릉이 최초조성되게 된 경릉)이 20세로 일찍 죽자 전국의 좋은 무덤자리를 찾던중 이속 서오릉을 무덤 자리로 정하게 되었다. 

서오릉을 왕릉자리로 정한 이름 높은 지관(地官, 풍수를 보는 사람)은 현재의 경릉자리를 가장 좋은 터로 추천하면서 이 무덤자리레 대해 설명하기를 "이 곳은 천하의 좋은 명당자리로 여기에 무덤을 만들면 아들 중에 왕위에 오르는 자가 있을 것이며, 대대손손 왕위를 하여 크게 번성할 것"이라며 명당자리임을 재차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곳이 좋은 무덤자리임은 틀림 없으나 이미 벌(蜂, 땅벌로 보임)이 땅속에 자리를 잡고 있어 이것이 큰 문제점"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무덤자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대가가 필요한데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게 되었다. 

이곳 서오릉에 무덤자리를 정한 명지관은 정확한 지점을 잡아준 후 반드시 1시간 후에 땅을 파도록 거듭 부탁 하고는 서오릉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관이 출발한 후 서오릉 일대로 검은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오자 인부들은 지관의 말을 무시하고 땅을 급히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수많은 벌들이 나와 지관을 찾듯이 돌아다니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이시간 지관은 부지런히 벌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많은 벌들이 서오릉 방향에서 날아와 지관에게 달려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관은 온몸에 벌이 쏘여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하여 사람들이 벌의 집자리를 왕릉자리로 잡은 지관이 벌에세 벌받은 고개라고 이곳을 벌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조선조 19대 숙종이 별세하자 서오릉에 묘소를 정하고(명릉) 이고개를 넘어 가는데 지관이 하관담당자에게 반드시 이고개를 넘어 관을 내리라고 하였는데 하관생원이 이를 어기고 고개를 넘기전에 관을 내리자 하늘이 오하여 천둥과 번개를 치고 무수한 벌떼가 나타나서 하관 생원을 쏘아 죽였다고 하여 벌고개라고 하였다거나 이 서오릉 땅에 일반 백성의 출입을 업격히 차단하여 어길시 벌을 주었다고 "벌이고개"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지명이 품은 한국사 : 서울 경기도편, 이은식 (공)저)


서울시의 공식 지면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은평구 갈현제2동 옛 자연 마을인 궁말에서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갈현동 308번지 일대의 고개이다. 벌현(罰峴)이라고도 하였다. 이 고개는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덕종과 덕종비 소혜왕후 한씨의 능인 경릉의 청룡이 되는데, 낮고 약하여 사람이 다니면 더욱 낮아질 염려가 있다 하여 통행을 금지한 다음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큰 벌을 주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버리고개,벌현이라고도 하였는데, 후세에 발음상으로 같은 벌〔蜂〕로 보아 봉현(蜂峴)이라고 하였다. 옛날에 이 고개에 호랑이 피해가 있으므로 세조 11년(1465)에 병조판서 金礩을 명하여 범을 잡게 했으나 실패하자 세조가 친히 봉우리에 올라서 장수들을 지휘하여 범을 잡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이야기가 많은 걸로 보아 원래 산 주변에 벌이 많았고 이벌에 쏘인 사람이 많아 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듯하지만 지금은 도심의 영향으로 벌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아쉬운 것은 고양시에서 설치한 푯말의 내용과 서울시의 지명사전의 내용이 달라 보기가 좋지 않은 느낌이 있다. 


물론 문학적으로야 이야기가 풍성한 것이고 세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상상력이 쌓인 결과이겠거니 생각하면 굳이 나뿐일은 아닐수도 있겠다.  



팻말을 지나 조금 가다보면 식당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 너머로 봉산이 시작된다.



봉산 시작지점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역시나 시작은 계단... ㅠ.ㅠ



300미터쯤 올라가면 쉼터가 나온다. 



다시 계단..



또 계단...



이렁게 올라가면 봉산 정상이 나온다.



봉수는 국가 긴급 통신망으로 외적의 침입을 중앙으로 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는데 가장 먼곳에서 중앙까지 전달하는데 1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평안도 강계에서 시작해서 황해도, 경기도를 지나 서울로 들어가는 3로가 가장 중요하였는데 서울의 서북쪽에 있는 봉수대는 대부분 이 3로나 아니면 4로에 속했던 것 같다. 3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양시 봉대산의 해포봉수를 지나 이곳을 거쳐서 무악 봉수를 지나 남산에 올려 졌을 걸로 추측된다.실제 앞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봉산 정상에서 남산을 바라보았을때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이 백련산이고 우측 봉수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안산(무악산)의 봉수대 옆 방송 중계안테나다. 



등산당일 하늘 빛이 가을 같아서 전망이 아주 좋았다.



봉수대 옆 팔각정과 함게 파노라마...



봉수대 옆 팔각정에서 쉬고나서 다시 길을 대촉 한다. 이제는 거의 내려가는 길이다.



나무들 방재작업 해둔 걸 보니 참 도심지의 산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인듯 하다.









내려 가는 길도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다.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아래 지점에서 길이 왼쪽으로 내려간다. 잠시 방심했으면 놓칠뻔했다.















내려오는 길 거의 끝에 갑자기 운동장이 나타난다. 그러면 운동장 왼쪽으로 구멍이 있다. 그리로 내려간다.



내려오자마자 반가운 스탬프통이 보인다. 이번 코스도 대략 끝이 났다는... 



봉산 코스는 여기 와야 화장실을 볼수가 있다. 은평구가 시설면에서는 좀 약한 편이었다.



화장실 일을 본 후 동내 길로 내려가 증산역으로 길을 재촉한다.



불광천 변으로 있는 큰길로 나와 왼쪽으로 길따라 증산역으로 간다.



증산역 도착... 하지만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더 걸어 가기로...



점심은 중식으로 마감하기로 했다. 증산역에서 조금 거리가 있기는 했는데 음식 맛은 만족스러운 가게 였다.












7-2 코스는 슬슬 불한산 자락의 느낌이 나기 시작하는 산지 코스다. 


난이도는 중간 정도 되는 것 같고 험한 길은 아니엇다. 전반적으로 흙산이라 등산로는 잘 갖춰져있고 부드러운 흙길이다. 


코스는 어느쪽에서 시작하더라도 비슷한 느낌일 듯 하다. 


글을쓰는 현재 8코스를 종료 했다. 사진을 정리하고 포스팅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