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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르는 산

둘레길 3-1코스 다시 강넘어

미뤄뒀던 3코스를 시작한다. 3코스는 광진교를 넘어 고덕산일자산을 돌아 수서로 가는 코스다. 3코스는 난이도는 높지가 않은 코스(제일 높은 곳이 해발 80미터 정도) 지만 총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두번에 나누어서 걷기로 했다. 트래킹에 접근성을 고려해서 광나루역에서 고덕역까지 10km구간을 먼저 하고 수서역에서 고덕역까지 코스를 한번에 하기로 했다. 물론 본인이 자신있다면 한번에 가는게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전체 구간은 다음과 같다. 


등산/하이킹
2017. 9. 2. 8:24 AM
소요 시간 3h 35m 12s , 거리 10.7 km
고도 높지않은 길이라 편하게 하시면됩니다. 다만 거리가 조금 기니 유의하세요.
-작성자 black207, 출처 램블러
광나루역에서 광진교 넘어 고덕산 도는 코스
트립의 상세 내용을 보려면 http://rblr.co/VsiR 를 클릭하세요.

8시 반 정도에 일행들과 광나루역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도심구간이라 인기가 없을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둘레길 도는 티가 나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광나루역 출구를 나오면 바로 둘레길 안내 표지가 나온다.



표지를 바라보고 좌측으로 깅을 나서서 출발한다. 아침에 모일때 식사하기 좋은 장소였다. 물론 밥은 먹고 왔다. 



가다보면 광진교들어가는 방향으로 광나루 표시가 나온다. 



광진교 들어가는 방향으로 들어간다. 


서울에 한강에 만들어진 3번째 다리라고 하면 제3한강교인 한남대교를 생각 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광진교가 한강의 세번째 다리이다. 한강철교는 총 4개로 그중 첫번째가 1900년에 만들어 졌고, 그뒤 12, 44, 94년에 만들져서 총 4개가 만들어 졌는데 우선 한강철교가 만들어 졌고 그 뒤에 1917년에 한강 인도교가 만들어 진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잘 알고 있으나 1936년에 광진교가 세번째 다리(철교를 제외하면 2번째)로 만들어 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물론 그쪽 동네에 오래 사신 분들은 아는 일이지만


광진교는 총길이 1,056m의 다리로 처음에 건설될 당시(1936) 일부는 트러스교, 일부는 게르버T형교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누가 설계 했는지 누가 건설했는지 등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만든 이유는 분명했다. 1920년대에는 광진교 근처는 광나루가 주된 교통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때는 증기선도 있어서 서울의 동부나 동남부 쪽으로 가는 교통을 대부분 감당 했다고 한다. 1930년 이후로는 늘어난는 교통량을 도선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어 1936년에 광진교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전해 1년전 한강대교가 재건축을 했는데 이때 기존 초기 한강대교에서 사용했던 강재를 가져와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https://namu.wiki/w/%EA%B4%91%EC%A7%84%EA%B5%90)


이후 6.25전쟁시 한강대교와 함께 폭파되었다가 1953년도에 다리교각을 더 만들고 트러스 부분을 없애고 전체를 라멘 게르버교로 만들었고 1980년대부터 노후로 인한 안전문제가 대두 되다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이후 주민의견 등을 고려해서 전면 철거 후에 현재의 다리로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 뒤에 걷는 다리로 만들어진 것은 2009년도이다.


언뜻 보면 천호대교와 거의 붙어있어서 처음 서울 생활 할 때 광진교를 보고는 커다란 다리 옆에 조그만한 다리가 있어서 왜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와 여러 굴곡진 경로를 지나온 다리가 그때 그 모습은 아니지만 참으로 걸어본 만한 다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정표를 조금지나면



스탬프 박스가 보인다. 일단 찍고 본다.



광진교 초입에 우측으로 천호대교가 보인다.


천호대교는 광진교 보다 훨씬 뒤인 1976년에 광진교의 노후에 대비하여 새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프리스트레스트콘트리트 교량으로 만들어 졌다. 도로 접속부 일부는 스틸박스이지만 대부분은 PSC이다. 당시 한강에 놓인 PSC는 영동대교 이후 두번째 였다. 하지만 영동대교나 천호대교는 경간장 자체가 50m 수준으로 짧아 미적으로는 전혀 볼 것 없는 다리이긴 하다. 물론 당시 사회가 사회간접 자본의 미적인 부분까지 고려 할 수 는 없었겠지만..


하지만 직후인 80년대가 되면서 개통된 원효대교나 성산대교등을 보면 이미 교량의 미적인 부분에 대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볼수 있다는 것으로 볼 때 계획을 세울 당시인 천호대교나 영동대교의 계획을 세우던 시점인 70년대 초반과 성산대교나 원효대교의 계획을 세우던 70년대 후반의 경제적인 변화는 실로 눈부시다 할 수 있을 듯 하다



광진교 위는 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져 있다. 



앞에 분들도 아마도 둘레길 도는 분들인 듯...



좌측으로 멀리 구리 암사대교가 보인다.



천호대교 넘어로 올림픽 대교가 보인다.  잠실대교,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광진교 등이 나란히 있는 것으로 봐도 그렇지만 이 쪽 방면의 인구나 교통량은 정말 상당한 것 같다. 



올림픽대교의 꼭대기의 조형물을 보면 항상 헬기 추락 사고가 생각이 난다. 

올림픽대교는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서 여러면에서 많은 공을 들여 새운다리이다. 대한민국에 두번째 사장교(첫번째는 진도대교, 1984년)이며 한강위의 최초(1990년)의 사장교(다리상판을 직접 주탑에 줄로 매다는 방식, 현수교와는 다름 참고)이다. 주탑은 총4개의 88미터짜리이고 케이블은 총 24개로 24회 올림픽을 뜻한다. 

하지만 다 좋았는데... 2001년 중앙탑 상부에 불꽃 모양 조형물을 설치하던 치누크헬기가 추락해서 조종사 3명이 전원 사랑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무리한 작업이었다는 논란도 많았고 그 어디에도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안타까운 사고 였다. 



그 뒤로는 롯데의 바벨탑 제2 롯데 월드가 보인다.


지나가는 길에 뮤직벤치가 마련되어 잇었는데 소리가 나진 않았다. 






걷는 다리로 개조된 뒤에 설치된 듯한 화장실이다. 참고 하시길..



광진교 거의 넘어와서는 우측으로 한강둔치로 내려간다. 지나오고서야 알았는데 광진교 밑에 전망대가 있었다는데 입구를 보질 못했다. 살짝 아쉬움... 



광진교 전체 모습이다.



요기서 부터는 약간 지루한 한강변 걷기가 시작된다. 자연스레 빨라지는 걸음을 느낀다.












한참을 가다보면 모형 비행기 날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근처에 소형 무인비행기용 활주로가 있다고 한다. 때마침 누군가 제트기를 날리고 잇었는데 사진 촬영에는 실패...






암사 나들목에서 잠시 쉬어간다.



나들목 건너편에서 동내길로 암사동 선사 유적지 쪽으로 간다.















서울 암사동 유적지는 을축년 대홍수(1925)로 그 존재가 드러난 유적지이다. 이때만 해도 일제에 의해서 특별히 고고학적인 접근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발굴되지 않고 있다가 1967년 유적 발굴조사를 하고, 1971~75년 재 발굴조사를 거쳐 1980년대에 다시 발굴했다. 발굴결과 약 6000년전의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시대 백제의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고 지금은 전시관 개보수 중이다









암사유적지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구리암사대교 밑을 지나서 고덕산 자락으로 올라가게 된다.









언덕을 올라가면 좌측으로 구리암사대교가 보인다. 


구리암사대교는 용마터널과 함께 이용하게 되면 동대문 쪽에서 암사동이나 중부 고속 도로 쪽으로 바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다리이다. 구리 암사 대교는 구리시 아천동에서 강동구 암사동 쪽으로 연결되면서 명칭을 가지고 지역간 약간의 다툼도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이름 문제보다는 암사대교 북단에 있는 용마터널이 유료터널이라 그 요금 가지고 싸우는게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까?



첫번째 고개를 암사 아리수 센터 정문앞으로 간다. 






아리수 정수센터 앞에서 왼쪽으로 본격적으로 고덕산으로 올라간다.












고덕산은 원래 이름없는 야산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높이 겨우 200미터도 안되는 산이라 이름이 따로 붙어 있고 거기다가 상당히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어 무슨사연이 있나 했는데 그내용이 고덕산 정상 부근에 안내 되어 있었다.


고려시대 충신인 석탄 이양중공이 고려가 망한뒤에 관직을 버리고 야인으로 이곳 산자락에 은둔하면서 후일 인근 사람들이 덕이 높다고 고덕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고덕산 정상을 지나 고덕역쪽으로 내려간다. 화장실이 없어서 여기서 부터 발걸음이 빨라 졌다. ㅠ.ㅠ











































































고덕역에 근처에 도착 도장을 찍고 지하철로...









고덕산 구간은 전반적으로 매우 평탄한 길이다. 한강을 건너와서 한강공원을 나서면서 부터는 화장실이 없으니 한강공원에서 화장실은 반드시 거쳐서 나올것을 추천한다. 아주 혼쭐 났었다.